
마자파히트 왕국의 유산 | 자바로부터의 문화 유입
마자파히트 왕국의 유산 | 자바로부터의 문화 유입
15세기, 이슬람화되는 자바에서 피신한 힌두 귀족과 승려. 발리에 전해진 궁정 문화.
오늘날 발리 문화를 형성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친 자바섬으로부터의 문화 유입입니다. 당시, 동부 자바에서 영화를 누렸던 인도네시아 최후의 힌두교 대국 '마자파히트 왕국'이, 이슬람 세력의 대두로 쇠퇴했습니다. 그 결과, 왕국을 섬기던 귀족, 승려, 예술가, 장인과 같은 엘리트 계층이,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바다를 건너 발리섬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세련된 궁정 문화, 법률, 종교 의식, 예술, 그리고 카스트 제도는, 발리 토착 문화와 융합하여, 현재의 '발리 힌두교'라고 불리는 독창적이고 풍부한 문화 체계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발리는 말하자면 마자파히트 왕국의 문화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바 최후의 힌두 왕조의 영광
마자파히트 왕국은 14세기에 그 최전성기를 맞이하여, 현재의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 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해양 국가였습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독자적인 종교관을 가졌으며, 문학, 건축, 조각 등, 극히 수준 높은 궁정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고대 자바어(카위어)로 쓰인 서사시는, 지금도 발리의 와양 쿨릿(그림자 인형극) 등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자바의 문화는, 훗날 발리 문화의 모든 측면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마자파히트 왕국을 이해하는 것은 발리 문화의 뿌리를 아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슬람화의 물결과 발리로의 대이동
15세기에 들어서자, 자바섬 북부 해안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항구 도시 국가들이 차례로 대두하며, 마자파히트 왕국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져 갔습니다. 내분까지 겹쳐 왕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왕국의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유지하려 했던 많은 힌두교도가, 안식처를 찾아 동쪽으로 피신했습니다. 그 최종 피난처가 된 곳이 발리섬입니다. 이 '문화적인 대이동'은 한 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단속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발리섬이 선택된 것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또한 이미 자바의 문화와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리에서 꽃피운 마자파히트의 유산
자바에서 이주한 엘리트 계층은, 발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의식을 관장하는 브라마나, 왕후 귀족인 크샤트리아와 같은 상위 카스트를 형성하며, 발리 사회 구조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법률, 역법, 관개 시스템과 같은 사회 제도나, 가믈란 음악, 궁정 무용, 회화와 같은 예술 양식도 그들에 의해 전해져, 세련되었습니다. 특히, 클룽쿵현의 겔겔, 그리고 훗날 스마라뿌라에 설립된 왕국은, 마자파히트의 정통 후계자를 자처하며, 발리 전역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발리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나, 의식에서 외우는 만트라에도, 마자파히트 왕국의 짙은 유산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