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과 랑다 | 선과 악의 이야기
바롱과 랑다 | 선과 악의 이야기
영원히 맞서는 선과 악. 의례로서의 무대와 관광 공연의 차이.
발리 힌두교 우주관의 근간을 이루는 '선과 악의 끝없는 싸움'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성스러운 동물 바롱과 마녀 랑다의 이야기입니다. 바롱은 숲의 왕이며 사람들을 지키는 선한 힘의 화신입니다. 반면 랑다는 강력한 흑마술을 부려 질병과 재앙을 가져오는 악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이 무용극은 단순한 권선징악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승리하는 일 없이, 양측의 힘은 영원히 팽팽하게 맞선다고 합니다. 이 균형이야말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상이 밑바탕에 있습니다. 절정에서는 랑다의 마술에 걸린 병사들이 스스로 가슴에 검을 꽂는 처절한 장면도 있습니다. 이는 관광객을 위한 공연뿐만 아니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으로서 지금도 발리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선의 화신, 성스러운 동물 '바롱'
바롱은 발리섬의 토착 신앙과 힌두교가 융합되어 태어난, 사람들을 지키는 성스러운 동물입니다.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의 사자나 인도 신화의 성스러운 동물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사자의 모습을 한 '바롱 켓'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멧돼지(바롱 방칼)나 호랑이(바롱 마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바롱은 단순한 가상의 생물이 아니라 마을의 수호신 그 자체입니다. 사원에 모셔진 바롱의 가면에는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며, 오달란(사원 제례) 때는 마을을 행진하며 액운을 쫓아냅니다. 그 춤은 때로는 익살스러운 몸짓을 섞으면서도 선함이 지닌 따뜻함과 강인함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희망을 줍니다.
악의 상징, 마녀 '랑다'
바롱과 맞서는 랑다는 발리 신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긴 송곳니, 크게 뜬 눈, 그리고 축 늘어뜨린 혀를 가진 그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공포를 줍니다. 랑다는 '미망인'을 의미하며, 그 기원은 11세기에 실존했던 자바의 왕비 마헨드라닷타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녀는 흑마술을 사용하여 남편인 발리 왕 우다야나에게 추방된 후, 복수를 위해 전염병을 퍼뜨렸다고 전해집니다. 랑다는 죽음과 파괴를 관장하는 시바 신의 아내 두르가의 화신으로도 여겨지며, 제자인 마녀(레약)들을 이끌고 바롱의 선한 힘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한 절대악이 아니라, 세계의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파괴의 힘'이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어 발리의 복잡한 우주관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끝없는 싸움과 세계의 균형
바롱과 랑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 싸움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무용극의 절정에서 바롱과 랑다는 격렬하게 대결하지만, 승부가 나지는 않습니다. 선한 바롱이 랑다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악한 랑다 또한 바롱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는 '루아 비네다(Rwa Bhineda)'라고 알려진 발리 힌두교의 기본 사상을 반영합니다. 루아 비네다는 선과 악, 삶과 죽음, 낮과 밤처럼 세상은 상반되는 두 요소의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으며, 양쪽의 팽팽한 균형 상태가 우주의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의식에서의 무아지경과 크리스(검) 춤
바롱 댄스 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인 것은 랑다의 마술에 걸려 무아지경(트랜스 상태)에 빠진 남성들이 자신의 몸에 크리스(성스러운 검)를 꽂는 장면입니다. 이는 '응우렉(Ngurek)'이라 불리며, 관광객을 위한 공연에서는 흉내만 내지만, 본래 의식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신자들은 바롱의 성스러운 힘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검으로 가슴을 찔러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고 믿어집니다. 이 자기 공격은 인간 내면의 악이나 욕망과의 싸움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이 신들린 듯한 상태는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가 만나는 순간이며, 발리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줍니다. 의식으로서의 바롱 댄스는 공동체 전체를 정화하고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종교 행위입니다.
